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부여군이 집행한 예산은 총 8조 3,853억 원에 달한다. 이를 가구당으로 환산하면 2억 6,620만 원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그러나 이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은 기대와 정반대다. 같은 기간 동안 부여군의 인구는 줄었고, 기업은 떠났으며, 군민의 소득은 감소했다. 예산은 사상 최대였지만 삶의 지표는 후퇴했다. 이 괴리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고,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품은 도시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한 자랑거리가 아니라 경고이기도 하다. 백제는 왜 멸망했는가. 중앙 권력이 약화되고 귀족 중심의 권력 분산이 심화됐으며, 외교적 판단 실패와 경제 기반의 붕괴, 민심 이반과 내부 분열이 누적된 결과였다. 오늘날 부여군 행정을 바라보는 군민들 사이에서 이 장면이 겹쳐 보인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가볍지 않다.
상징성과 외형에 집중된 행정, 주민 삶과 연결되지 않은 복원·관광 사업, 특정 행정 라인과 기득권 중심으로 설계된 예산 구조는 결과적으로 군민을 정책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 관광은 늘 이야기되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고, 사업은 많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없다. 행정은 각종 평가와 표창을 내세우지만 군민은 그 성과를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다.
부여군은 청렴도 1등급, 재정집행 우수기관, 충남 시·군 평가 상위권이라는 성적표를 반복적으로 홍보해 왔다. 그러나 이 평가는 절차와 집행률 중심이다. 군민의 소득이 늘었는지, 청년이 돌아왔는지, 지역 경제가 자립의 길로 들어섰는지는 평가 항목에 없다. 현재 추진 중인 많은 규모의 사업 가운데 상당 부분이 행정 운영비와 인건비로 소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보여주기식 관광·경관 사업이다. 백마강 일대 파크골프장 확장, 대규모 정원 조성 사업, 강변과 저수지 주변의 각종 구조물 설치 사업들은 ‘지역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이용 계층은 제한적이고 유지·관리비는 고스란히 세비 부담으로 남고 있다. 일부 사업에서는 안전사고까지 발생했지만, 사업 구조 자체는 반복되고 있다.
부여군의 재정자립도는 2024년 기준 10.0%로 충남 최하위권, 전국에서도 하위권이다. 산업 기반은 약하고, 기업 유치는 지연되고 있으며, 청년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관광만으로 지역은 살 수 없다. 일자리가 없는 관광은 체류를 만들지 못하고, 체류 없는 관광은 지역 경제를 지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부여군 행정은 여전히 산업화보다는 행사와 시설 중심의 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구조다. 예산을 얼마나 쓰느냐보다,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느냐가 핵심이다. 사업 기획 단계에서 주민 참여는 형식에 그치고, 결정은 이미 내부에서 내려지는 구조, 실패해도 책임지지 않는 관행, 성과보다 홍보를 중시하는 행정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결과는 달라지기 어렵다. 이는 백제 말기 탐관오리와 호족 정치가 민심을 외면하며 몰락의 길로 들어섰던 모습과 닮아 있다.
부여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보여주기식 관광 사업을 과감히 재검토하고, 지속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축소하거나 중단해야 한다. 부여읍과 규암을 중심으로 한 일반산업단지 조성, 전략산업 유치, 기업 친화적 제도 정비를 통해 자립형 경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와 정주 여건을 만들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
아울러 군민의 감시와 참여를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예산 공개의 투명성을 높이고, 군의회와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을 실질화해야 한다. 표창과 홍보 중심의 행정에서 벗어나, 군민의 삶이 실제로 나아졌는지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교훈을 배우는 공동체만이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부여는 백제의 멸망을 품은 도시다. 이제 그 역사를 미화의 재료가 아니라, 행정과 정책을 성찰하는 거울로 삼아야 할 때다. 군민의 세금은 군민의 삶을 위해 쓰여야 한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다음 부여의 자녀세대는 더 가난해질 것이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경고다. 지금이 바로, 진짜 부여를 되찾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